‘그리다’(peindre)와 ‘보다’(voir)의 존재론적/미학적 층위 연구

논문지 39집 조회수 2121
저자 김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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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미학적 존재론의 관점에서 회화의 근본이 되는 ‘그리는 것’(peindre)과 ‘보 는 것’(voir)에 대한 연구이다. 메를로 퐁티는 역저 [눈과 마음](L’Oeil et l'esprit)에서 세잔, 마티스, 클레, 자코메티 등 근대 화가들의 예를 통해 회화의 본질에 대해 궁구한 바 있다. 특히 세잔은 동 시대의 다른 화가들과 달리 회화의 기법이 아니라‘본다는 것’과 ‘그린다는 것’과 같은 ‘회화의 진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추구하였다. 그린다는 것은 지각과 몸의 현상으로서 심미적, 형이상학적. 존재론적 차원을 지닌 다. 본다는 것(la vision)은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 세계와 만나는 가장 근본적인 사건 으로서 사물과 현상의 본질로 들어가는 행위이다. 메를로 퐁티에게 있어서 본다는 것 은 몸을 통해 나와 사물이 교차하는 현상으로서 키아슴(chiasme), 뒤엉킴(entrelacs), 가역성(réversibilité) 등으로 표현된다. 몸과 세계의 교차성, 뒤엉킴, 키아슴의 존재론 적 지평(horizon)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예술의 공간이다. 폴 발레리가 말하듯이, 화가는 ‘몸을 세계로 가져와 몸으로 세계를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몸으로 세계를 표현한다는 것은 기존 서구 근대회화의 재현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다. 회화가 재현이 아니라면, 회화가 바라보고 표현하는 세계는 표상으로서의 세 계가 아니라 ‘살’의 세계(la Chair du Monde)인 것이다. ‘살’이란 현상학적 메타포로 서 감각의 피륙으로서의 세계와 그것의 존재론적 층위가 드러나는 현상성 (phénominalité)과 차원(dimension)을 말한다. 그러므로 회화의 진실은 미메시스와 ‘그럴듯함’(la vraisemblance)의 재현이 아니라, 사물과 존재의 형상화이고 그것이 드 러나는 사태(l’événement)가 되는 것이다. 존재는‘저 쪽 어디에 있음’이 아니라 ‘드러 남’(dévoilement), ‘존재의 나뭇가지’(rameaux de l’Être), 파열(fission), 만개 (déshiscence), 발광(illumination) 등의 메타포로서만 표현 가능하다. 지각의 대상인 존재와 세계는 언어의 차원을 벗어나서 사유될 수 없고, 의미와 하나를 이룬다는 의 미에서 로고스(Logos)의 미학이 가능한 지점이고 - 메를로 퐁티의 말대로 - 미학적 세계의 로고스(Logos du monde esthétique)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