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살 장면의 역사적 기록과 사진

논문지 기호학연구 48집 조회수 1098
저자 이경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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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를 죽이는 처형 장면은 원래 그림으로 재현되어 왔고 화가들은 그것을 상상
으로 재구성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근대 산업이 발전하고 제국주의가 팽창하는 시
기에 전쟁에서 소총이 보편화되면서 죄인의 처형은 교수형에서 총살형으로 바뀌게 된
다. 그런데 참수형이나 교수형과는 달리 총살형은 특별히 사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다. 그 이유는 19세기 과학의 발전과 산업혁명 그리고 대중매체의 발전과 함께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는 방식이 점진적으로 데생 화가의 손에서 대량 이미지 복제가 가능한
사진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진의 역사에서 사형수가 총살되는 사진은 의외로 드물게 나타난다. 그 이
유로 우선 총살 장면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기술적인 문제 특히 오랫동안 순간포착이
불가능했던 기술적인 한계를 들 수 있다. 역사적 사건을 현장에서 카메라로 순간 포착
한다는 것은 1925년 라이카 소형 카메라의 출현 이전까지 지나치게 큰 사진판과 무거

운 카메라로 인해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19세기에 나타난 총살 장면의 역사적 기록
은 총살의 순간포착이 아니라 연속 시퀀스 방식으로 총살의 집행 과정과 그 흔적만
보여준다.
총살 장면이 흔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비록 공개 총살이라 할지라도 총살을 기록
한 사진은 정권 유지와 프로파간다 선전을 위해 언제나 정치적 검열과 조작에 노출되
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포토저널리즘에서 총살되는 순간을 그대로 촬영하여 전파
하는 것은 예견치 않은 장면의 선정성 문제를 야기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죽음을 생중
계하듯이 총탄에 피를 흘리는 참혹한 장면이나 총을 맞고 꼬꾸라지는 순간포착은 아
무리 대중의 알 권리가 우선이라 할지라도 장면의 지나친 묘사에서 윤리적인 비난을
받기 때문이다.

끝으로 포토저널리즘에서 나타나는 총살 장면들은 대부분의 경우 현장에서 우연히
포착된 결정적 순간이다. 이럴 경우 촬영자는 어떠한 정치적인 선입견도 없이 자신이
목격한 현장을 군중의 입장에서 기록하는 ‘관찰자적인 관점’을 가진다. 특히 잔혹한
총살 집행에서 불법으로 개입된 카메라의 눈은 집행자들의 입장이 아니라 인본주의적
시각과 인류학적 관점을 가진다. 그러나 관찰자적인 관점은 촬영된 장면이 대중에게
알려지고 난 후 흔히 현장에서 촬영자의 방관이나 무책임에 대한 암묵적인 비평이 따
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