쟝켈리비치의 순수와 불순의 역설로서의 삶의 윤리

논문지 기호학연구 51집 조회수 871
저자 박치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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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쟝켈레비치는 프랑스에서 라캉, 푸코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현대철학자
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그는 국내에는 거의 소개된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아마도
데리다, 들뢰즈, 레비나스에 대한 철학대중의 수요가 쟝켈레비치에 대한 수요보다 컸
던 것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본고에서 우리는 이런 이유 때문에 그의 철학을 소개하
려는 것이 아니다. 그의 철학에 대해 필자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본고에서 살펴본
순수와 불순을 포함해 불행한 의식의 가치와 의미, 아이러니, 양자택일, 거
짓말에 대하여, 악, 덕행에 대한 논설 등 대부분의 저서들이 실존의 도덕과 윤리
에 집중된 까닭이 무엇인지를 밝혀보기 위해서다.
어떤 연유로 실존의 철학과 형이상학이 쟝켈레비치의 철학적 고민의 중심을 차지하
게 된 것일까? 유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는 나치의 직접적 피해자이기도 했다. 그의
철학적 관심이 ‘존재’보다 ‘실존’에, ‘순수’보다 ‘불순(비순수)’에 집중된 것은 따라서 우
연이랄 수 없다. 그가 히틀러의 나치 치하에서 자행된 비인륜적⋅반도덕적 악행을 보고

도 무관심이나 침묵으로 일관한 현실방관적인 천사주의자들, 순수 관념론자들을 ‘최악
의 위선자’라 비판하면서 자신의 역설론(paradoxologie)을 주창한 것도 이 때문이다.
쟝켈레비치의 역설론은 순수(이성, 계몽, 질서, 빛)의 지대보다 불순(복잡, 혼돈, 애
매, 무질서, 어둠)의 지대를 규명하는데 목표가 있다. 그에 따르면 ‘순수’는 실재하지
않는다(n’existe pas). 게다가 어떤 사람도 순수하지 않다. 결국 순수, 순수함은 그가 판
단할 때 하나의 이념으로 요청된 것이거나 소명으로 요구되는 것일 뿐 정작 현실과는
동떨어진 개념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모든 인간은 바로 이 두 지대를 ‘동시에’ 살
아가고 살아내야 하는 존재다. 인간은 바로 이 두 지대 사이(entre les deux)에서 삶도
일구고 사랑도 실천하며 학문도 수행한다. 그의 표현대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의 역설
론은 ‘불가능한 필연성’에 기초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