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등과 숭고미의 전복, 똥의 기호 - 연암 박지원의 ‘똥’을 중심으로

논문지 기호학연구 51집 조회수 1018
저자 박수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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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일종의 아브젝시옹인 똥에 대한 탐구를 통해 금기와 질서에 도전하는 인
간의 정신에 대해 살펴보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연암 박지원의 똥에 대한 담론
을 살펴 전근대 시대에 똥이 갖는 의미와 연암이 똥을 통해 들려주려 한 바를 분석하
였다. 연암의 글에 나타난 똥이 기존의 허위를 폭로하고 전복하려는 공통의 기능을 하
면서도 제각기 다른 지점에서 이야기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똥의 의미를 세 층위
에서 접근했다. 먼저는 「일신수필」 ‘장관론’에 나타난 똥거름의 의미를 살폈다. 연암은
똥거름이 진짜 장관이라고 주장했는데, 가장 쓸모없는 똥에서 가장 큰 쓸모를 발견하
는 발상은 장자의 사고와 맞닿아 있었다. 연암에게 똥은 금의 가치를 지닌 훌륭한 자
원이었고, 문명의 표상이었다. 모든 존재는 미적 가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숭고/비천, 미/추, 쓸모 있음/쓸모없음의 이항 대립을 해체하여 기존의 규범이 얼마나
모순되었는지를 드러냈다.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에 등장하는 똥 푸는 사람을 통
해서는 좋은 친구란 누구인가?, 참다운 인간이란 누구인가에 대해 들려주었다. 똥은
신성한 존재였다. 가장 천한 존재가 가장 고귀한 사람이라는 역설을 제시하여 전통적

인 인간관에 대한 전복을 꾀했다. 「예덕선생전」의 똥이 건강한 인간을 표상하는 기호
로 쓰였다면 「호질(虎叱)」에 나오는 똥은 부조리한 인간을 풍자하는 기호로 작용했다.
「낭환집서」에서의 소똥은 주변/중심을 해체시키는 기호였다. 똥을 통해 다양함의 가치
를 조명하고 주변적인 가치가 중심이 될 수 있음을 말했다. 곧 연암에게 똥은 숭고/비
천, 중심/주변, 우아미/추의 미, 고귀함/천박함, 쓸모 있음/쓸모 없음, 청결/오염의 이항
대립을 해체하고 차등과 차별을 전복시키는 기호였다. 근대와 고전 시대 선비들이 똥
을 야만의 징표로 본 만면 연암은 똥에서 문명의 징표를 읽었다. 똥을 통해 기존의 규
범과 관습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질서를 이야기했다. 그리하여 가장 비천한 사물에서
가장 신성한 것을 찾아내는 차원 높은 상상력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