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과 금서

논문지 기호학연구 52집 조회수 1100
저자 김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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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소설 장미의 이름은 이탈리아 북부의 어느
수도원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의 유일한 필사본으로
인해 발생한 일련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이든 장님 수도사 호르헤는 수도사들
이 이 작품을 읽으려고 하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금지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
한다. 무엇보다 먼저 그는 도서관의 미궁 같은 구조와 여러 가지 교묘한 접근 방해 장
치를 이용한다. 둘째로 그 문제의 텍스트를 다른 텍스트들과 함께 제본하여 보관함으
로써 찾기 어렵게 만든다. 또 다른 방법으로 그는 책장의 모서리에 독약을 발라놓음으
로써 만약 읽으려고 시도할 경우 죽게 만드는 것이다. 그 외에도 각종 회유와 협박 등
을 통해 그 책에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사건의 발단은 호르헤 수도사의 웃음에 대한 편협한 관념, 말하자면 ‘미달해석’ 때
문이다. 그는 웃음이란 추하고 경박한 것으로 특히 하느님을 섬기는 수도원에는 어울
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은 바로 희극, 그러니
까 웃음에 대해 논의하고 있으며, 따라서 엄숙하고 경건해야 할 수도원에는 어울리지
않는 불온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
의 명성과 권위에다 그 세상에서 유일한 필사본에 대한 세속적인 애착 때문에 차마

 없애버리지 못하고 일종의 비공식적인 금서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사건의 전모는 윌리엄 수도사의 명석한 기호 해석과 합리적인 분석에 의해 밝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