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dy and Letters in the Age of New Media: How can we reformulate the Semiotic Project in the context of East Asia?

논문지 제35집 조회수 6360
저자 Hidetaka Ish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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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 시대에 있어서 신체와 글자: 동아시아 맥락에서의 기호학적 프로젝트

 

이시다

 

기호학은 인류 최초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는 것과 그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손을 사용하여 두뇌의 재현적인 행위를 수행하는 것은 기호학적인 것이다. 은나라의 갑골문자는 거북과 같은 신성한 동물을 이용하여 점괘를 얻는 것이다. 하늘은 이진법적인 음양의 원리를 통해 답하고 사람들은 아날로그적 기호인 글자를 쓰고 읽는 것으로 길흉화복을 점지한다. 즉, 처음에는 하늘로부터 도래한 디지털 기호가 아날로그화되어 땅에 도달하는 것이다. 중국 보편문자의 체계는 갑골문자로부터 기원한 것이다.
보편문자 체계에 관한 라이프니치의 프로젝트는 우리가 서구와 동양이 기호학을 접목하고자 할 때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한자의 체계에서 인식되는 것과 같은 아날로그 성의 자취가 보편문자 체계에도 있다고 믿는다. 라이프니치에 따르면, ‘한자의 비밀을 발견한다면 사고체계를 분석 할 수 있는 비결을 발견하는 셈이며, 기초가 되는 한자는 400개 가량이며 다른 것들은 이를 조합한 것’이다. 결국 그는 중국 보편문자 체계의 보편 기호학에 관한 핵심 요소를 발견했다. 그는 팔괘를 구성하는 이진법 연산의 원칙을 추출하기도 했는데 ‘이 연산 체계에서 놀라운 것은 0과 1로 구성된 이 연산이 고대의 왕이자 철학자였던 Fuxi의 비밀을 담고 있다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사실’이라고 썼다. 컴퓨터와 인포메틱스가 라이프니치가 꿈꾸던 보편수학, 보편문자, 결합술의 바탕으로부터 300여년 후에 탄생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동양 기호학자들에게 이 역사적 일화는 간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서구 기호학과 동양의 기호학이 만날 다음의 중요한 순간을 위해 아날로그 미디어 혁명을 기다려야만 한다. 음운론적 혁명은 아시아에서도 현대 언어학에 이르는 길을 닦았다. 그러나 기호학적 핵심은 단순히 이것은 아니다. 아날로그 미디어 혁명은 인간의 담화를 동일한 국면의 미디어적 각인으로 대체한다. 사진photography, 영화cinematography, 축음기phonography, 전화 등이다. 기호학의 행로를 위해 더 나아가, Daniel Bougnoux 의 모델을 차용한 기호학 피라미드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것은 퍼스가 제안한 기호, 즉 상징, 도상, 지표의 삼분류에 기반한 것이다.
언어와 관련한 기호학 피라미드는, 최상단 상징의 단계로부터 글자의 이탈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재구될 수 있다. 언어학은 이제 구조주의 시대의 인문과학을 위한 “견본과학pilot science” 로서 인식된다. 반면 녹음된 목소리는, 발화자, 가수, 혹은 배우의 신체적 단계를 강조하면서, 도상적이고 지표적인 기호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기호학 피라미드는 구텐베르크 피라미드를 대체한다.

쓰기의 행위는 미디어 혁명에 의해 변화해왔다. 인간은 더 이상 그들의 손으로 담화를 기술하지 않는다. 그들의 몸은 기계에 의해 기술되기 시작한다. 인간은 ‘말하고’, 기계는 그들의 신체를 ‘새로운 기술(記述) 테크놀로지’를 통해 ‘각인한다’ ‘새로운 기술(記述) 테크놀로지’ 혹은 ‘graph-테크놀로지’란 사진photography, 영화cinematography, 축음기phonography 등이다. 인간은 더 이상 인간적 연결 방식을 통해 소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계는 원격tele-테크놀로지를 통해 소통한다. 전신telegraph, 전화telephone, 텔레비전television 등. 급진적인 기술 시스템의 전환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과 기계 사이에 발생하는 간극이다. 이것은 ‘기술적인 무의식’에 관한 질문이 된다. 인간은 더 이상 쓰지 않지만, 그의 몸은 기계에 의해 쓰여진다. 그러므로 인간의 의식이 이 쓰기의 무의식인 셈이다. 따라서 신체는 아날로그 미디어 혁명에 의해, 기호학의 표면으로 떠오른다. 기호의 신경학적 과정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아날로그 미디어에 의해 분산된 다층적인 기호들이 뇌에서도 평행하게 분산된 과정의 시스템을 요구한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아날로그 미디어의 핵심인 graph/tele 테크놀로지의 발명은 세계를 기호의 시대로 이끌었다. 이상의 변화를 기호학 피라미드를 상하로 복제하는 기계에 의해 써지는 신체와 함께, 기호학 피라미드의 세미오시스는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기계적 과정에 의해 복제된다. 미디어를 경험할 때, 신체는 인간의 세미오시스에 따른 마음에 의해 해석된다. 반면 기계는 동일한 신체를 기호적 과정을 통해 처리한다. 이미지를 경험하는 것은 기술문화에서는 글자에 의해 기술된다. 그러나 아날로그가 먼저이고 디지털이 다음인 미디어적 메커니즘은 기호와 숫자의 관점에서 이미지를 처리한다.
인간의 세미오시스는 항상 이미, 그리고 점점 더, 기계처리과정과 접점을 가지게 되며, 상징 단계는 결국에는 프로그램에 의해 모방된다는 것을 알수 있다.

최근 발생하는 지식의 일반적인 변형의 양상을 “지식의 디지털적 전환” 이라 부른다. 동양과 서양의 기호 체계가 모두 디지털 논리에 기반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모든 인간은 이진법 언어가 모든 글자, 그러므로 모든 기호의 기반이 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두 손가락은 계산기와 같다. 즉, 우리의 몸은 인간의 세미오시스와 정보처리 과정 사이의 접점에 놓여 있다. 또한 지시사는 항상 보편적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는데 이 단계에서 우리의 존재가 지표적인 단계의 디지털화된 기호와 함께이기 때문이다.
접점, 즉 인터페이스로서의 우리의 신체는 디지털 세미오시스의 보편적인 해석소가 되고 있다. 오늘날 기호학 피라미드는 복제된 디지털 쌍이다. 글자는 숫자로, 상징은 프로그램으로 복제되며 마음은 기계로 복제되고, 또한 모방된다. 이러한 디지털 문명에서 신체는 중재적인 위치에 서게 된다. 현실은 이미 이미지이고 행위는 인공적 기억이다. 이것이 포스트-휴먼의 상태이다. 따라서 새로운 보편 과학의 시대에 상응하는 새로운 기호 과학을 구축해야만 한다. 기호가 컴퓨터상의 복제를 가진다면, 기호학은 정보 기호학이 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의 의미론적인 신체를 포스트-휴먼의 삶의 해석소로서 다루게 될 것이다.